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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춘명 목사(익산 정다운교회)
제가 섬기고 있는 정다운교회는 익산 왕궁의 한센인 특수 지역 안에 있다. 과거 전국에는 소록도, 애양원 등을 비롯해 약 100여 개의 한센인 마을이 있었고,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그곳의 어르신들이 이 지역으로 옮겨오곤 했다. 현재 왕궁 한센인 공동체는 규모 면에서 전국 최대일 것이다. 한때 약 1,600여 명이 함께 살았으나, 정부의 새만금 ‘맑은 물’ 정책으로 인해 주요 생계 기반이던 축산단지가 작년을 기점으로 폐쇄되면서 젊은 세대 대부분이 떠났다. 지금은 약 350명 정도가 남아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 지역은 ‘특수 지역’이라는 한계를 지닌 동시에, 일반 농어촌 및 산골 교회들이 겪는 어려움까지 함께 안고 있다.
그래도 이 자리에 있는 이유
부임 후 신앙생활과 예배를 중단한 성도님을 심방했다. “믿음 생활, 예배 생활을 회복했으면 합니다.“라는 권면에 “제가 왜 가야 되나요? 또 기회가 되면 좋은 조건이 구비되어 있는 교회로 또 가실 거잖아요. 그런데 제가 왜…” 심방 후 주님께 나아가 “주님, 이런 마음의 상처가 없도록 제 발을 묻겠습니다.” 부족하고 하물며 것 같지만, 주님 앞에 드린 서원 기도는 그래도 지켜야 하기에 지금도 여기서 사역하고 있다.
바로 왕의 물음에 “제 나그네 인생이 130년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라고 대답한 야곱처럼 저를 포함하여 주님께 부름을 받은 대다수 목회자의 삶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 안에 있는 사람과 주 예수 밖에 있는 사람의 삶은 전혀 다르다. 주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는 주님의 은혜와 역사가 하심이 엮어져 있다. 주님의 손길과 냄새가 있고, 주님다운 은혜와 고백이 아름답게 스며져 있다. 1997년에 부임해서 이곳 익산 정다운교회로 부임해서 지금까지 27년의 시간이 그러했다. 27년 전 부임했을 때 성도가 6명이었다. 심방이 12시간이면 끝났다. 또 전임 목사님이 열악한 환경에서 옛날 교회 현관을 부수고 리모델링했는데, 그때 갚지 못한 돈이 빚으로 남겨져 있었다. 그래서 제가 부임하자 교회에 돈 빌려준 분들이 빚을 갚으라고 종종 찾아오곤 했다. 주님께 무릎으로 나아가 “주님, 저 돈에 대한 상처가 있다는 것 아시죠.“라고 기도했다. 교회 건축을 위해 아버님이 어려운 형편 속에서 건축 작정 헌금 300만 원을 했을 때, “교회에 바칠 돈 있으면 공부하게 자서서 값 좀 주세요!“라고 항변하기도 하고, 경제학과 면접시험 때 “교수님, 저는 공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상경 계열 나오면 취직 잘 된다고 해서 지원했습니다. 빨리 돈 벌어서 집 빚 갚아야 합니다.“라고 답변했던 나였다. 오죽했으면 “주님, 빚만 갚아주면, 주님께서 하라는 대로 다 할게요. 이 빚 갚아주세요. 그리고 주님, 저에게 일감 좀 주세요.“라고 매일 간구드렸었다. 주님의 은혜로 교회 빚은 67년 만에 갚게 되었다. 이때 성도가 40~50명 되었고, 성도들에게 자립을 선포했다. 그동안 지원해 준 교회 목사님들을 찾아뵈었다. “목사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는 저희보다 어려운 교회들을 지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목회자로 부름받음
신실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모태 신앙인이었지만, 한때 신앙을 떠나 성경을 불태울 만큼 방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대학교 1학년 때 어머니의 눈물어린 기도와 주님의 붙드심으로 다시 돌아왔고, 말씀을 통해 주님의 살아계심을 깊이 체험했다. 그 무렵 어린재단을 통해 17세까지 집에만 갇혀 지내던 뇌성마비 환우 박OO을 만났다. 매주 한 번씩 자원봉사를 하며 주님의 마음을 배웠고, 그를 돌보는 시간을 통해 “주님 이런 아이들을 위해 내 삶을 드리겠다.“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 주님은 그 서원을 이루게 하셨다. 서울 고덕동의 장애인 공동체 시설 ‘우성원’에서 생활지도사로 약 20명의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며, 진정한 섬김과 헌신의 의미를 배웠다. 사실 당시에는 ‘목사’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많아 목회자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누군가 “목사가 되면 장애인 사역, 어린이와 청소년 사역, 어른들을 위한 사역까지 모두 할 수 있지 않느냐?“라고 말했고, 그 말이 마음에 깊이 박혔다. 그해 겨울, 서울신학대학원에 지원했고, 그 길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교회 공부방 개설과 정다운아동센터 운영
정다운교회에 부임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찾아오셨다. 특수 지역 내에 손녀딸이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까막눈이라 숙제 지도를 해줄 수 없다고 하시면서 손녀딸 학습지도 좀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고민 끝에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 중 하나가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기쁜 마음으로 아이 학습지도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점차 늘어 45명, 1012명까지 이르렀다. 교회 공부방을 하면서도 아이들이 다른 교회에 다니기에 여전히 주일학교 아이가 없었다. 어느 이른 아침, 교회 차로 주변 마을을 둘러보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몇몇 아이를 발견했다. 이곳은 익산시에 속해 있지만, 완주군과 익산시의 행정이 겹치는 곳이어서 학교는 완주 삼례에 다니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을 차에 태워 매일 아침 7시 50분에 학교로 바래다주기 시작했다. 18년 동안 아이들을 아침 통학으로 섬겼다. 이를 계기로 주일학교가 생기고, 중·고등부가 생기게 되었다.
교회 공부방은 2005년, 익산시청 담당자가 방문해 아동센터로 등록해 달라는 요청을 하면서 그때부터 ‘정다운아동센터’로 정식 등록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 지역의 부모들은 ‘특수 지역’이라는 편견 때문에 자녀들의 주소를 주변 지역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새만금 맑은 물 사업 정책으로 인해 축산업에 종사하던 주민들이 폐업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수도 줄어들었다.
어느 순간 ‘이제는 때가 되어 마무리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사모와 함께 정리할 준비를 하던 중, 뜻밖의 방문이 있었다. 평소 섬기던 천주교 공소의 노(老) 수녀님 중 한 분이 찾아와, 자신들이 운영하던 다문화 아동 사역을 중단하게 되었으니, 그 아이들을 맡아 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때 이것이 주님께서 다시 아동센터를 붙잡게 하시는 뜻임을 깨달았고, 여러 한계 속에서도 믿음으로 그 사역을 이어가게 되었다.
시온 육아원 섬김
교회 자립을 선포한 후, ‘우리 정다운교회가 교회 밖에서 섬길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를 고민하던 중 마을에 때묻은 곳이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시온 육아원이었다. 시온 육아원은 원래 이 지역의 한센인 가정 아이들을 돕기 위해 세워진 기관이다. 이후 지역 어르신들의 가정이 안정되면서, 깨진 가정의 아이들,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 그리고 조손 가정의 아이들을 위탁받아 섬기는 곳이 되었다. 정다운교회는 지난 15년 동안 해마다 두 차례(교회 창립주일 전후와 추수감사주일 전후) 이곳을 찾아가 섬겨왔다. 사모는 손맛이 좋아 늘 교회 위의 귀한 분들과 함께 정성껏 섬겼고, 사모가 주님 곁으로 간 뒤에는 뜻을 함께하는 교우들과 그 사역을 이어 가고 있다. 앞으로도 교회가 존재 하는 한, 시온 육아원을 향한 섬김은 계속될 것이다.
성 목요 경로당 수제비 섬김
1997년에 부임해 교회를 둘러보니, 교회에 출석하지 않아도 지역 주민의 약 92%가 이미 다른 교회에 이름을 올려두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사역의 전도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단하고, 교회가 위치한 특수 지역을 넘어 주변 농촌 마을의 어르신들을 섬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경계의 시선과 무심한 반응이 많았지만, 꾸준히 찾아가 인사드리고 섬기다 보니 조금씩 마음을 열어주셨다. 명절 전후에는 홀로 지내는 분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해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추석 이후, 양금 마을을 방문했을 때 한 어르신이 “목사님, 저 멀리 혼자 사시던 최 할머니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어요. 어제 장례를 치렀어요.“라고 전해주었다. 그 소식은 큰 충격이었다. 할머니는 늦게 재혼하셨다가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혼자 지내셨고, 아들 부부와 전주에서 함께 살게 되었지만,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던 분이 아파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신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교회 주변에는 더 이상 이런 일이 없도록 합시다. 우리가 먼저 찾아가 섬깁시다.” 그 이후 교회는 주변 농촌 마을과 행정 구역이 다른 삼례 지역 경로당까지 매주 목요일마다 12년 동안 수제비 봉사를 이어갔다. 이후 정부와 지자체에서 경로당 지원 사업이 확대되면서, 사역은 자연스럽게 마무리되었다.
지방회 어려운 산골 교회 섬김
지방회 안에는 생각보다 어려운 교회들이 많다. 우리 교회도 작지만, 더 어려운 형편에 있는 교회와 목회자들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사모와 함께 지방회의 작은 교회와 시골 교회들을 돌아보다가, 마당이 포장되지 않았거나 천장에서 비가 새는 교회들을 보면 마음을 모아 수리비를 돕기도 하고, 뜻있는 분들과 함께 도로 포장 봉사를 하기도 했다. 특히 요리를 잘하던 사모가 중심이 되어 매년 2월에는 임실 산골 마을의 한 교회를 찾아가 섬겨왔다. 그곳의 ‘임실 등대교회’가 성도가 없어 예배가 중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을 무척 아팠다. 사모와 함께 직접 방문해 이전의 사역하던 목사님께 양해를 구한 뒤, 작년부터는 등대교회가 있는 마을의 경로당을 중심으로 어르신들을 초청해 섬기기 시작했다. 사모는 주님 곁으로 떠났지만, 올해도 그 섬김은 멈추지 않았다. 한 달 전부터 마을 경로당 앞에 초청 현수막을 달고, 도착하면 먼저 섬기던 교회에서 기도로 시작한다. 이후 집집마다 방문해 어르신들을 경로당으로 초청한다. 작년에는 등대교회 옆집에 사시던 어르신도 오셨는데, 교회 땅 문제로 오랫동안 갈등이 있었던 분이라 더욱 감격스러웠다. 이날 모인 마을 어르신들은 40~45명가량이셨다. 식사 전에는 등대교회를 섬기는 교역자 분이 기도하고, 모든 순서가 끝난 뒤에는 초청장과 선물을 전했다. 내년에도 변함없이 기도와 섬김으로 이 사역을 이어갈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 섬김
요즘 농촌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삼례 읍내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거나 걸어가는 외국인 노동자를 보면, 나는 그들을 읍내나 정류장까지 태워주곤 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언젠가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갔을 때, 그 나라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호감을 가지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태국, 라오스, 우즈베키스탄,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이 함께 살아간다. 그중 라오스 출신의 아윤이라는 청년은 일하던 중 귀신을 본다며 일을 그만둔 적이 있었다. 그 일을 듣고 사과나무 농장 사장님이 전화를 걸어와 상담을 요청하셨다. 함께 기도하며 이야기한 후, 지금은 더 이상 그런 현상을 겪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가끔은 아윤의 어머니도 찾아오는데, 스마트폰 번역 앱을 통해 서로 대화를 나눈다. 또 다른 가정은 네팔에서 온 ‘너연’ 부부이다. 세 살배기 너연이는 부모가 각각 익산과 남원에서 일하며 떨어져 살아야 했다.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 나는 남원에서 일하던 너연 어머니가 가까운 지역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제자가 운영하는 장미농장에 연결해 주었다. 지금은 가족이 함께 지내며 안정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해서 예배 참석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어느 날, 너연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사님, 예배드리고 싶어요.” 그날 이후로 이 부부는 작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매주 너연이와 함께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주일에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하는 날이면 “오늘 예배드리지 못해 죄송해요.“라는 문자를 꼭 보낸다. 때로는 그들의 진심 어린 신앙 태도에 깊은 감동을 받곤 한다.
1년에 두 번 전도초청잔치
부임 이후 지금까지 매년 두 차례, 4월 교회 창립주일과 가을 추수감사절에 맞춰 전도 초청잔치를 열고 있다. 한 사람이라도 초청에 응해 함께 예배드릴 수 있다면, 누가복음 15장의 말씀처럼 주님께서 춤추며 기뻐하실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 행사는 단순한 행사 이상으로, 교회의 존재 목적을 다시 새기게 하는 귀한 시간이다. 이때는 그동안 함께해 온 지역 어르신들, 아이들의 부모님, 외국인 노동자들, 그리고 아동센터를 거쳐 간 대학생 청년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찾아온다.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분들이 ‘응원군’처럼 찾아와 함께 예배드리며 큰 격려가 되기도 한다. 정다운교회가 존재하는 한, 이 전도 초청잔치는 올해도, 내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주간보호소 어르신 섬김
교회 바로 앞에는 약 70여 명의 어르신들이 생활하시는 주간보호소가 있다. 여름마다 아웃리치 팀이 방문하면 그곳을 찾아가 찬양과 공연으로 기쁨을 나누고, 사모는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죽을 정성껏 끓여 대접해 왔다. 또한 익산시의 여러 아동센터(세움, 가온, 중앙, 그리고 정다운아동센터)의 아이들이 함께 참여해, 매년 11월에 주간보호소를 찾아 연합공연을 펼치고 있다. 아이들의 노래와 율동, 악기 연주가 어르신들께 큰 위로와 웃음을 전하며, 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따뜻한 시간이 되고 있다.
아웃리치팀 연합 섬김
시골 교회는 아무리 뜻이 있어도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해 사역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교회 내부의 힘만으로는 어려울 때가 많아, 관계를 맺고 있는 외부 자원과 협력하며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지난 10여 년 동안 변함없이 아웃리치를 와주는 서울 온누리교회 양재성전 대학·청년부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연결된 공동체다. 그 시작은 아주 작은 인연이었다. 수원에서 근무하며 주말마다 내려와 교회를 섬기던 우리 교회의 한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이 근무하던 병원에서 여름 아웃리치를 고민하던 온누리교회 청년에게 “우리 교회에 와서 함께 섬기면 어때요?“라고 한마디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한마디를 통해 지금까지 이어진 관계를 보면, 이는 분명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온누리교회 대학·청년부가 내려오면서, 서울 가정법원 맞은편 온누리교회를 섬기고 있는 창포나무병원 원장님도 함께 동참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매년 2차례 의료팀을 데리고 와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 진료와 상담을 진행했다. 이후에도 직접 방문은 어렵지만, 여전히 이 사역을 잊지 않고 1년에 2번씩 영양제와 파스를 보내며 “대신 잘 섬겨 달라.“라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성탄절 시즌의 ‘블레싱 아웃리치’는 정다운 가족들과 함께 성탄 축하의 밤을 열고, 혼자 지내는 어르신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찾아가 성탄 선물을 전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한다. 또한 사라져가는 전통인 새벽송 사역을 26년 동안 한결같이 이어오며, 밤 12시부터 주변 농촌 마을과 위로가 필요한 가정을 직접 찾아가 찬양으로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여름 아웃리치는 크게 두 부분으로 진행된다. 첫째, 어린이 성경학교에서는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중학생까지 참여하여, 대학생 봉사자들과 1:1 멘토링을 통해 학습 및 진로 상담을 함께 진행한다. 둘째, 어르신 방문 사역에서는 경로당을 찾아 섬기고, 거동이 불편하거나 외로움으로 인해 교제하기 어려운 분들을 직접 연결하여 찾아가 위로한다. 주간보호소 공연 사역으로 섬기며, 복음 제시가 필요한 어르신에게는 전도의 달란트가 있는 대학생이 함께 복음을 전하고 영접 기도를 돕는다. 또한 믿음이 깊은 어르신들과 대학생들이 서로 연결되어, 젊은 세대가 신앙의 도전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아웃리치에 참여한 대학·청년들은 단순한 봉사를 넘어, 사역 중 혹은 마지막 밤의 Q&A 시간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과 삶에 대한 깊은 답을 얻는 은혜를 경험한다. 또한 사역이 끝난 이후에도 서로의 기도 제목을 나누며 지속적인 중보기도를 이어가는 모습은 아웃리치가 단순한 행사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영적 공동체 운동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또 서울 광장교회는 코로나 이전 약 5년 동안 정기적으로 아웃리치를 와서 귀하게 섬겨주었다. 이곳의 어르신들은 다른 감각은 많이 약해졌지만, 맛에 대한 감각만큼은 여전히 생생하다. 이를 잘 아는 광장교회 아웃리치 팀은 매번 어르신들을 마을회관으로 초청해, 서울 준(準) 호텔 수준의 식사로 정성껏 대접했다. 그 덕분에 어르신들은 “우리가 이렇게 귀하게 대접받을 수도 있구나.” 하는 감동을 느끼며 큰 기쁨을 누리셨다. 매회 약 120~130명의 어르신들을 섬기는 은혜로운 시간이 이어졌다. 재작년에는 목사님의 서재실이 없으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광장교회 아웃리치 팀이 직접 나서서 목사 서재실 리모델링을 해주었다. 그 공간은 지금도 서울에서 내려오는 아웃리치 팀들이 머물며 사역할 수 있는 쾌적한 숙소이자 사역 준비 공간으로 잘 활용되고 있다.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지
아웃리치가 단발성 행사로 끝나지 않고 4~5년 이상 꾸준히 이어진다면, 그것은 농어촌·산골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될 것이다. 세상 속에서, 그리고 농어촌 현장에서 계속되는 이 아웃리치는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삶의 현장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 복음이 농어촌과 산골 마을의 어르신들에게 선포되고, 그들의 삶 속에 스며드는 참된 전도와 선교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현재 섬기고 있는 교회는 지역의 특수성과 축산단지 폐쇄라는 현실적인 어려움, 그리고 함께 사역하며 동역했던 사모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 교회의 핵심 구성원 약 20여 명이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목회를 경험한 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다운교회는 사역을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주님을 사랑하며, 3I 목회 철학에 뜻을 같이하는 헌신된 정다운 가족들과 함께 세상을 향해, 이웃을 향해 끊임없이 아웃리치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신실했던 어머님 또한 평생 어려운 삶을 견디며 주님께 매달리셨다. 너무 힘겨워 지쳐 쓰러질 때, 어머니는 주님 앞에 눈물로 기도드렸고,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얘야, 이 가정의 구레네 시몬이 되어라.” 그 순간 주님의 십자가가 하늘로 높이 올라가며 “끝날에는 십자가로 승리하게 될 것이다.“라는 환상을 보셨다고 한다. 그 말씀이 지금도 나의 마음을 붙드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지금의 상황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께 주셨던 말씀과 사도행전 2장, 4장, 6장 7절 말씀을 붙들고 매일 기도한다.
“주님, 지역의 한계, 교회의 한계, 목사의 한계가 분명히 있지만, 주님은 결코 한계에 갇히신 분이 아니십니다. 이 한계를 넘어 무한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주님의 살아계심이 드러나게 하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 성령을 통해 충만히 역사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행 6:7). 예수님의 마음으로 섬기고, 사랑하며, 예수님의 안타까운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는 정다운 가족들과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여호와이레의 하나님,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 모든 순간과 상황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순복합니다.”
이춘명 목사 전북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고대동 소재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생활지도사로 섬겼으며, 청소년 야간학교를 5년간 운영했다.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부산진삼광교회를 거쳐 익산 왕궁 정다운교회의 담임목사로, 1998년부터 현재까지 익산 왕궁 한센인 특수 지역에서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